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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天王寺址

사적 제8호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최초로 세운 쌍탑가람의 호국사찰. 절터에서 출토된 녹유사천왕상전(綠釉四天王像塼,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은 당시 신라 최고의 조각가였던 양지(良志)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천왕사지(四天王寺址)는 신라 왕궁이었던 반월성 동남쪽에 높이 115m의 낭산(狼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낭산에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과 의상대사가 출가하여 머리를 깎은 곳으로 유명한 황복사지(皇福寺址)와 신라 제30대 문무왕 화장터로 알려진 능지탑(陵只塔) 등 많은 신라시대 유적이 산재해 있습니다.

사천왕사지
사천왕사지 四天王寺址

신라는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삼국을 통일하게 되었지만, 한반도 전체를 지배하려는 야심을 드러낸 당나라는 신라 30대 문무왕 14년(674)에 50만 대군을 출병시켜 신라를 공격했어요. 이때 신라는 부처님의 불력으로 당나라군의 철수를 염원하며 세운 절이 바로 사천왕사였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 사천왕사의 창건설화에 따르면 당나라 황제는 여러 차례 신라를 공격했지만 모두 실패하자 당시 당나라에 와 있던 문무왕의 동생 김인문을 책임을 물어 옥에 가둔뒤 50만 대군을 출병하여 신라 공격을 꾀하고 있었어요. 이를 미리 간파한 김인문은 당나라에 유학 중이던 의상대사에게 알렸고, 의상대사는 서둘러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당나라의 침략 야욕을 신라 문무왕에게 전했습니다. 문무왕은 용궁에서 비법을 배워 신통력이 강하다는 명랑법사(明朗法師)에게 당나라를 물리칠 비책을 물었습니다.

명랑법사는 낭산 남쪽에 있는 신유림(新遊林)에 사천왕사(四天王寺) 건립을 권유하였는데, 사찰 건립에 착공하기도 전에 당나라군이 쳐들어온다는 급보가 들어왔습니다. 명랑법사는 임시로 오색견으로 절을 만들어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밀교 비법)으로 기도하자 큰 바람이 불어 당나라군은 신라와 싸우지도 못하고 당나라 배는 모두 침몰하고 말았어요. 그 후 5년 후에 절이 완공되면서 사천왕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사천왕사는 신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소원을 빌어 당나라군을 물리친 신라의 대표적인 신라 7대 호국사찰 중 하나였습니다.

사천왕사 가람배치는 신라 통일 이후에 발전해가는 금당을 중심으로 동탑과 서탑, 북쪽으로 좌경루 우경루의 1금당 2탑 가람이었지만 지금은 기단석과 초석만이 그 옛날을 말해주고 있어요.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사천왕사비와 국립경주박물관의 녹유사천왕상전, 사찰 입구에 두부가 떨어져 나간 비석대의 귀부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습니다.

조성시대 : 통일신라 문무왕 19년 (사적8호 1963.01.21)
소재지 : 경북 경주시 배반동 935-2

등록일 : 2006-03-26

※위의 기사는 취재시점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지 사정에 따라 지금과 내용이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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