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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노동리 · 노서리고분군

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경주노동리 · 노서리고분군은 담장이 있는 대릉원과 달리 나즈막한 언덕처럼 보이는 신라시대 고분군이 지금도 경주시민들의 가옥들과 더불어 대릉원 후문 바로 앞 봉황로를 중심으로 동서로 산재해 있습니다.

경주노동리고분군

2011년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으로 재지정된 노동리고분군은 전체 3기 중 규모가 비교적 작은 2기 ‘금령총’, ‘신리총’ 이 발굴조사가 이루어 졌으나, 아직 발굴되지 않은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일명 ‘봉황대’라고 부르는 고분이 있습니다. 이 고분은 높이가 22m, 둘레가 250m에 달해서 단일 고분으로는 신라의 무덤 중에서 가장 큰 왕릉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慶州路東里・路西里古墳群
경주로동리고분군 금령총과 봉황대

금관과 금령이 출토되어 이름 붙여진 금령총은 신라시대의 진수를 보여주는 27cm 높이의 금관을 비롯해 국보 91호인 도제기마인물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리총은 화려한 금동신발이 출토되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고분은 동서 5.3m, 남북 3.3m, 높이 1.2m 정도의 목곽을 만든 후 그 위에 냇돌을 쌓고 흙으로 덮은 지름 약 9m정도의 돌무지덧널무덤으로 4세기에서 6세기에 걸쳐 조성된 전형적인 돌무지덧널무덤입니다. 부장품으로는 금동신발을 비롯하여 각종 장신구·토기·금속기·철기 등의 용기류와 마구·무기 등이 다수 출토되었습니다.

경주노서리고분군

慶州路東里・路西里古墳群
금관총 金冠塚

노서동 일대 평지에 밀집되어 있는 노서리고분군은 지금까지 5기의 무덤이 발굴조사되었으며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1921년 금관이 처음 출토되면서 이름 붙여진 ‘금관총’을 비롯해 1926년 스웨덴 왕세자가 발굴에 참가하여 금관이 출토되면서 이름 붙인 ‘서봉총’ 등이 있습니다.

경주노서리 고분군 서봉총(瑞鳳塚)

호우총(壺棹塚)

1946년 처음 한국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된 ‘호우총’은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제기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뚜껑이 있는 청동합이 발굴되었는데 그릇 바닥에 새겨진 명문으로 호우총이라고 이름 붙여졌습니다. 고구려 유물이 어떻게 경주까지 흘러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당시 고구려와 신라가 우호 관계에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귀중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총(馬塚)

쌍상총(雙床塚)

쌍상총(雙床塚)

예전에 도굴된 것을 일본학자 우메하라 스에하루(梅原末治)가 재조사했을 때 고분에서 말뼈와 마구 등이 출토되어 이름을 붙인 마총(馬塚), 돌로 된 침대 2대가 발견되어 이름 붙여진 쌍상총(雙床塚) 등을 통해 고대 이야기가 시간여행을 하며 우리 앞에 나타날 것 같습니다.

경주노동리 · 노서리고분군
경주노동리 · 노서리고분군 봉황로

봉분이 사라진 평탄한 고분도 여러 개 볼 수 있는데 아직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희박했던 시대에 고분의 봉분을 건축재로 사용하여 평평한 고분이 되었다고 합니다. 고분공원에는 곳곳에 벤치가 놓여있어서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거나 산책하는 장소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관광지명 경주노동리・ 노서리고분군
慶州路東里・路西里古墳群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노서동 104
입장료 무료
指定경주 대릉원 일원 사적 512호
가시는 방법경주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

※위의 기사는 취재시점의 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현지 사정에 따라 지금과 내용이 다를 수 있으니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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